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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의학신문] 원자력발전소보다 위험한 병원(?) (19.09.30)
readnum 936 date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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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한국의료질향상학회 부회장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위험한 장소일까? 직원 안전에 관한 여러 측정치 중에서 최선의 것으로 꼽히는 것은 TCIR(Total Case Incident Rate)이다. 이는 ‘근무시간 20만 시간 당 상해가 몇 건이나 발생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전일제 근로자가 일반적으로 연간 2000시간 일한다고 보면, 100명이 일하는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연간 상해 건수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각급 병원들이 OSHA(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라는 기관에 질병 및 상해 데이터를 보고하는데, OSHA 자료에 의하면 2016년 기준 병원들의 TCIR은 5.9다. 100명이 일하는 병원이라면 연간 6건 정도의 상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 숫자는 큰 것일까, 아닐까?

 

미국 원자 력발 전산업계의 경우 1985년부터 1995년까지의 기간 동안 TCIR은 0.3이었다. 물론 단순비교를 하기에는 병원과 원자력발전소는 여러 상황이 다르지만, 이 통계만 갖고 단순 비교할 경우, 병원이 원자력발전소보다 20배가량 위험한 곳이라는 의미다. 놀랍지 않은가.

 

최근 미국에서는 ‘제로 함(zero harm)’이라는 개념이 각광을 받고 있다. 경영진을 비롯한 병원 구성원 모두가 예방 가능한 상해와 손상을 제로로 만들 때까지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 미다.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아무리 노력해도 ‘제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안전과학 전문가들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절대적 의미의 ‘제로’라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 ‘어느 날 하루’ 아무런 위해나 상해가 없었다면, 그 조직은 그날 제로 함을 달성한 것이다. 그 다음엔 위해나 상해가 없는 일주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한 달, 마침내 1년 동안 위해나 상해가 전혀 없는 조직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러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조직은 ‘제로 함’ 상태가 깨지게 되지만, 그때부터 다시 제로 함을 향해 마음을 다잡고 새출발을 하면 된다.

 

의료분야 외에 수많은 산업분야에서도 안전은 중요한 이슈다. 안전과학을 적용하여 안전사고 발생률을 극적으로 떨어뜨린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고, 안전을 위한 노력이 결국 신뢰도 상승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원자력발전 산업의 경우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안전사고 발생률이 70% 이상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생산 단가는 28.7% 감소했다고 한다. 병원이 더 안전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이득은 원자력발전 산업분야보다 더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병원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그리고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우리나라 병원들도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더 안전한 병원’을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고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는 ‘제로 함(Zero Harm: How To Achieve Patient And Workforce Safety In Healthcare)’라는 책이 출간됐다. 제로 함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현실적 목표라는 믿음으로 다양한 노력을 해 온 각 분야 전문가 13명이 의기 투합하여 쓴 책이다. 미국과 우리의 현실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들이 지금 당장 적용해도 좋은 여러 프로그램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원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릉원주대학교 강명신 교수의 노력으로 곧 한국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라서 반갑다. 의료윤리의 네 원칙 중 첫째가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 아니던가. 모든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환자와 자신들의 ‘제로 함’을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의학신문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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